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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러시아 무장반란 사태

향기로운하루종일 2023. 6. 30. 08:35

 

<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내란에 대해서 >

브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갈등과 프리고진의 야심으로 러시아는 내전의 위험에 놓여있다. 각각의 입장차이를 보이며 대립하던 두 인물은 이웃나라의 중재안으로 유혈 충돌은 막았다. 

브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대해서

브라디미르 푸틴은 1952년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후, 다양한 직업을 가지면서 성장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체스선수, 스파이, 정보 고등학교 선생님 등 다양한 경험이 있다. 1999년 보리스 엘친 대통령과 일하면서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알렉산드르 리부드와의 마찰로 체포가 되고 그 개기로 대통력 직위에 오르게 된다. 푸틴의 통치방식은 러시아 전체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과 국내의 경제교육 및 재건이 이루어진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지도력은 특히 안보 문제를 다룰 때 드러나며, 우크라이나, 시리아, 북극, 미국 등과 관련된 문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일부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대해서

프리고진은 196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친부와 계부 모두 유대인 혈통이며, 유년시절 새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크로스컨트리 스키 챔피언을 꿈꿨다. 양아버지로부터 훈련을 받으며 체육기숙학교에 다녔지만 운동선수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18세에 절도를 해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절도와 강도를 하다가 1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7년을 복역했다. 1988년 사면을 받아 출소를 했지만 무일푼이었다.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으로 점점 성장해 요식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푸틴이 대통령에 오른 후 여러 해외 주요 인사들을 프리고진 레스토랑에 식사를 했고 푸틴의 생일날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을 맡아 그는 '푸틴의 요리사'란 별명이 생겼다. 푸틴을 등에 업은 프리고진은 여러 해택으로 막대하게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용병기입인 바그너 그룹을 설립하고부터이다. 악명 높은 바그너 그룹은 2022년 4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자행된 대규모 민간 학살의 주범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전생에 동원된 용병을 실제로 교도소에서 모병을 했다고 한다. 
 

프리고진의 야심시작 

프리고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계속된 패전으로 프리고진은 정부군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러시아군의 무능과 실책을 부각한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5월 14일 프리고진의 러시아 수뇌부에 대한 비판은 '약속된 보상을 못 받은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을 했고 이어서 모스크바가 무인기 공습을 받자 프리고진은 '뭐 했나'라고 푸틴대통령을 직격 나는 비판도 했다. 그 후 군 지휘부를 비난하고 바그너그룹의 승전을 공개하는 등 전면에서 나서기 시작하면서 외신은 프리고진이 크렘린의 입성하여 국방장관이 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모스크바의 정치권은 푸틴에게 부정적 의견들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푸틴의 입장에서 군사적 이용가치를 넘어서 정치적 역할을 맡기는 도박을 하지 않을 거라고 대외에서 예상했다.

 

바그너 그룹의 무장 쿠데타 시작

프리고진은 23년 6월 24일 국방부와 정규조직과 갈등으로 돌연 쿠데타를 일으킨다. 연방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의 용병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하여 2000명의 용병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 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며 반역죄로 체포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모스크바 바로 앞에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대통령의 중재안으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하는 조건으로 군을 철수하여 쿠데타는 일단락되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 정부의 형사적 면책을 받았다. 하지만 외신들은 프리고진은 앞으로 계속적인 암살시도에 노출되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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